당신은 얼마나 자주 기도 하고 있는가? 단순히 기독교적인 기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종교가 없다, 다만 철학을 배웠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은 곧 기도라 생각한다,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 힌두, 배화교까지 모두 저마다의 기도를 한다.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사랑을 달라, 평화를 달라, 잘되게 해달라 이런 내용들이다.
대개는 그런 것들은 일종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종교의 의식으로 사용 된다, 내용에서 배울 게 없는 것은 아니다.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기도하던 제대로 된 방식으로만 기도 한다면 분명 그 기도는 이루어진다.
기도란 즉 감사이고 나를 다스리는 주문 같은 것, 일종의 의식의 방향을 돌리는 장치로써 사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제일 유명한 반야심경을 예를 들어보자, 반야심경의 대부분은 반야심경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이고
실질적인 주문, 즉 기도는 매우 짧고 간단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가세 가세 피안으로 가세) 라는 뜻이다.
이 피안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반야심경은 앞에 피안의 대한 설명을 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당신이 만약 피안이라는 불교적인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 기도에 함축된 내용을 몸 소 느끼고 실천 할 수 있다면 저 열한글자는 당신에게 반야의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다 분명히. 간단히 설명하자면 피안이라는것은 부처가 이야기한 고집멸도에서 벗어난 상태 즉 해탈 한 상태를 의미한다. 피안은 불교의 심장과도 같은 단어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라는 말으로 모든 것을 설명 할 수 있다.
만물의 끝은 공이고 우리의 감각,생각,행동,의식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우리도 만물이니까. 이러한 불교의 철학을 이해하고 있다면
단순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모지사바하 라는 주언을 읊음으로써 의식을 불교적인 가치로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반야심경에는 이 기도를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일체 고 진실불허 라고 이야기 하고있는데
이 기도는 가장 신비하고 밝고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이것보다 뛰어난게 없다 라고 아주 그냥 개쩌는 기도다라고 네번이나 강조하고있다.
이 기도만 하고 앉아있으면 모든 고통을 뛰어넘고 진실을 알게되어 허망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반야심경을 듣고 이해하게 되면 단순히 피안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
불교는 애초에 종교화 되어서는 안되었을 철학계파이기 때문에 믿음보다는 지성을, 논리와 이해가 바탕이 된다.
반면 기독교의 기도는 조금 다르다. 제일 유명한 주기도문을 보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이슬람에서도 기본적은 틀은 같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아브라함계통의 종교이니까.
살펴보면 일단 나를 신께 맡긴다, 즉 신성과 나를 동시에 한다는 이야기, 우리는 신의 형상을 한 신의 아들,딸들이니까.
신의 뜻이 우리에게도 미치길 바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밥먹어서 감사하다! 살아있어서 감사하다!
타인을 용서하는것을 말하고 나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용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이 없다. 정말 진심으로 신의 의지에 나를 의탁하는것임으로, 석가모니가 이성으로 세계를 해석했고 석가의 핵심은 고통과 공이었다면 기독교의 핵심은 신으로의 귀의이며 신성과의 일치라고 생각한다.
둘다 궁극적인 목표는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욕구에서 시작 되었다.
그래서 기도는 결국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의식을 건강한쪽으로 돌리는데에 의의가 있다.
이러한 기도를 우리가 꼭 형식을 지켜서 할 필요는 없다. 기도가 정말로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는 기도를 진심으로 믿어야하고 우리의 무의식에 스며들어야한다. 습관처럼 하루종일 읊고 있다고 기도가 아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법은 감사하는것이다.
신께 삶에 감사하는것, 양식에 감사하고 천상의 평온함을 느끼는것, 모든것이 공임을 알고 더이상 슬퍼하지않는것 즉 평온한 상태를 만드는것, 즉 평온한 상태에서 내가 감사하며 바라는 모든 것은 곧 기도이다.
계속해서 말했듯, 기도의 본질은 의식을 돌리는 것에 있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상태에서는 무엇을 바라던 무엇에 감사하던 상관없다. 그러니, 욕망에 찌들어 있는 기도가 당연히 먹힐리가 없지 않은가, 당신은 절대로 평온한 상태가 아닌데.
정말 평온한 상태에서,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듯 한 상태에서 바라는 모든것은 인과가 쌓여 이뤄지게 된다.
이것이 끌어당김의 핵심이며 이것이 모든 종교가 말하고 있는 신성이며 이것이 우주이고 이것이 세계를 관통하는 진리이다.
내가 나를 내려놓을때 내가 진정으로 평온할때 그때는 내가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 그 때 바라는 모든 것은 좋은 인과가 쌓이기 시작한다. 내가 욕망에 찌들어 하는 모든것들은 정확히 내가 욕망한것의 반대되는 결과를 낸다.
그러니 여러분은 기도의 이런 습성을 잘 이해하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을 평온한 상태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어떤 종교든 종교인들은 소식하며 명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평온한 상태로 만들기만을 집중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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