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1부터 2023까지 영업직에서 일했었다. 실적에 따라서 월급이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지는 직장이었고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실적현황판이 나를 반겼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다른 사람들의 실적이 나를 짓누르기도 했고, 동기부여를 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상사와 고객들의 장부를 보며 고객관리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야 했고 각 팀장의 성향마다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다.
예를 들어 A팀은 실적이 중간 수준이었고 매출 또한 중간 수준이었다. A팀장은 이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던 사람이고 그 사람은 팀의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팀원들을 혼내곤 했다. 사무실에서 하루라도 A팀장이 소리 지르는 걸 보기 힘들 정도로 매일 아침 직원들을 그렇게 잡아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팀의 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직원들의 안색 또한 그리 밝지 않았다.
B팀은 최고의 실적을 당시에 가지고 있었고, 겉보기로는 B팀은 큰 문제없이 지내는 듯 보였지만, B팀장은 침착한 성격이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팀원들을 불러 잡곤 했다. A팀장과는 다르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했던듯하다. 하는 일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어떻게 했는지 보고를 하고 말 그대로 팀원들을 숨조차 쉬지 못하게 압박했던 듯하다.
내가 있었던 C팀은 생긴지 얼마 안 된 팀이었으며, 굉장히 자유를 보장했으나 실적이 떨어지면 이러다가 우리 팀은 없어진다. 그러면 다 네 탓이다. 우리 팀장은 스트레스를 내게 있는 것보다 더 과장 되게 표현했으며 우리 팀의 운명의 마치 내게 달려있는 듯 말했고 그 말은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 팀에서 영업직은 나 홀로였으니, 내가 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 팀의 매출과 명운이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팀장은 자기 기분에 따라왔다 갔다 하는 성격이었으며 매일같이 이러다 우리 망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 망한다. 똑바로 안 하면 우리 망한다. 매출이 안 나와서 사장한테 깨지고 왔다 이러다가 너도 나도 동시에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었다.
A, B, C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압박을 주고 있었다.
A팀은 직접적으로, 분노의 방식으로 B팀은 간섭과 간접적인 압박으로 C팀은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고 있었다. 지난 2년간 A, B, C팀은 어떻게 변했을까?
B팀의 B씨는 사무실에서 항상 최고의 실적을 자랑했다. 고객관리도 탁월했으며, 실적 또한 항상 탑에 있었다. 입사 시기도 나와 엇비슷했다. 나보다 2개월 먼저 들어왔던가 1개월 먼저 들어왔던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고,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어렸었다. 개인적으로 친하진 않았다. 그 사람은 유쾌해 보였고 자신감 있어 보이고 웃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사람 좋게 웃는 모습은 아니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오히려 위협적이고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항상 깨끗한 옷을 입었고, 단정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깔끔해 보이긴 했었다. 적극적인 사람처럼 보였고 뭐랄까 패기 있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외부 미팅을 본격적으로 나가기 전, 오전시간엔 사무실 옥상에서 영업직들 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고객관리를 하곤 했었다.
그 시간에 오며가며 듣는 이야기로는 B 씨의 영업 비결 같은 건 딱히 없었다. 그냥 하니까 됐다~정도밖에 말하지 않곤 했다. 나는 조금씩 궁금해졌다. 내가 볼 때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 저 사람의 비결이.
반면 실적이 좋지않은 A팀의 팀원들은 옥상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A팀의 영업직들끼리 따로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고, 그 사람들은 쉽게 만나지 못했다. 안색이 안좋아보였고 어쩌다가 만나게 되면 주식이나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걸 봤다. 복장도 평범했으며 뭐랄까 특색이 없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느낌이었고 평범한 사람들 같았다. 그 사람들을 잘 알만큼 시간을 같이 보내진 않았다.
나는, 입사 2개월 차에 사무실 1등을 찍었다. 3개월, 4개월 차까지 B 씨와 실적 한두 개 차이로 내가 이기곤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일을 잘했다기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았다. 새벽 3시까지 미팅을 하러 다니고, 접대를 하고 다니고 4시에 계약서를 들고 차에 타 사무실로 운전하던 도중, 갓길에 차를 대놓고 3시간 정도 잠을 잔 뒤 사무실로 출근하곤 했다.
나는 어디든 갔다, 일이 있다면 대전이건, 포천이건, 논산이건 회사 차를 타고 몇 시건 어디건 갔다. 하루에 최소 5명의 고객을 만났고 2개 이상의 계약을 못한 날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하루를 그냥 보낸듯한 기분에 이러다가 우리 팀이 망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일요일에도 일했었다. B 씨와는 다르게 나는 새벽까지, 주말까지 일해서 간신히 B 씨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지속하기 힘들었다. 5개월 차에 우리 팀장은 회사 내에서 C팀, 정확히는 내 실적과 매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회사일을 놓아버렸고, 나는 나 홀로 C팀을 운영해야 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랐고, 책임을 질 사람이 사라진 상황에서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게 되자 그때 당시에 나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이럴 거면 그냥 내가 팀장 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아졌고, 영업인 나뿐만 아니라 C팀의 사무직원들도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때쯤 A팀은 사무실을 나가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실적이 좋지 않아, 독립의 모습으로 쫓겨난 듯하다. 결국 A팀은 사무실에 남아있지 못했다. 이후로 들리는 소문으로는 계속 일은 하고 있지만 그때 당시 있던 직원들은 모두 그만두고 신입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A팀장의 방식을 버틸 수는 없었나 보다.
B팀은 A팀의 자리를 차지하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실적은 내가 위였어도 매출은 나보다 B 씨가 훨씬 좋았고, 그 말은 고객의 질이 나보다 훨씬 좋았고 고객관리를 더 잘했다는 뜻. B팀의 매출은 사무실내에서도 압도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B팀장은 가면 갈수록 거만해졌다.
C팀은 C팀장의 부재와 함께 실적이 평균 수준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쯤 나는 엄청난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실적을 해온다면 우리 팀은 없어지고 C팀장은 내 탓을 할 것이고 차라리 없어진다면 좋을 텐데, 사장과 나의 관계도 C팀장과의 관계도 썩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질 듯 말 듯 벼랑 끝에 몰려서 C팀장이 나를 탓하는 상황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그려졌다.
그렇게 나는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B 씨와 같은 효율이 나오지 않을까? B 씨를 비롯해 꾸준히 상위 실적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첫째로, 그 사람들 모두 스타일은 다 다르고, 어떤 사람은 부드럽게, 어떤 사람은 조금 위협적으로 보였으나, 모두 깔끔했다. 깨끗한 옷, 깨끗한 신발, 깨끗한 머리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그 당시에 나는 집보다 차에서 사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선 빨래조차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살았기 때문에, 이틀 동안 같은 옷, 이틀 동안 씻지 못하고 간신히 세수, 양치만 사무실 화장실에서 하곤 했다. 후줄근해 보였다.
둘째로, 그 사람들은 모두 뭔지 모르게 자신감 있어 보이고 안색이 좋고 유쾌해 보였다. 반면에 나는 지쳐 보이고, 안색이 까맣고,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 당시 나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지쳤고 힘들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사람의 말이 진정성이 있다 한들 그렇게 들리지 않았을 거다.
셋째로, 그 사람들은 모두 분위기가 있었다. 예의가 없진 않지만 뭔지 모를 위화감, 뭔지 모르게 그 사람들은 대하기 어려웠다. 편하게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위기, 이게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분위기가 뭘까? 어디서 오는 걸까? 말투일까? 목소리일까? 자세일까? 눈빛일까? 비싼 옷일까? 나는 이것에 대해 더 파고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한다. 종합적이라는 이유는 내가 거울을 볼 때 보이는 내 모습뿐 아니라 나의 모든 것, 미세한 표정과 손짓, 목소리의 떨림, 향기, 자세, 시선 등, 무의식적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한다.
분위기란 그런 것이다. 이 사람 자체의 무의식, 의식이 종합적으로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손톱의 정리상태, 목소리의 톤, 말투의 강세, 속도, 향기, 시선, 손짓, 어깨의 긴장도, 표정, 눈빛, 피부상태,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이 사람의 분위기라는 걸 만들고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이 "분위기"였다. 옷차림도, 자신감 있어 보이는 모습도 결국은 모두 분위기였다.
이것을 내게 완벽하게 알려준 건 우리 사장이었다. 사장은 나와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그의 인성이나 개인사가 어찌 되었건, 이 사람은 매일 같은 흰 티밖에 입지 않는데 말로 표현 못할 카리스마 같은 게 있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돈이 많은 거야 뭐 그렇다 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존중받을 수 있나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그리고 상위 실적을 유지하는 영업사원들 또한 분위기가 달랐다. 여유로워 보였고, 자신 있어 보였고, 뭔가 쉽게 대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이 분위기는 내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바로 생기는 게 아니었다. 이 분위기는 생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즉시 차를 항상 깨끗하게 하고 내 몸과 의복을 정갈히 깨끗하게 하는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머리도 깔끔하게 자르고 신발도 항상 깨끗한 것을 신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몸에 배지 않는 노력은 어색해 보였고 그 당시에 바로 적용되어서 내 실적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주진 않았다. 이것을 알고 반년이 지난 뒤에서 야 겨우 분위기라는 게 내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 하루 작은것들이 쌓여서 나도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는게 생겼고 그 뒤로는 영업이 많이 쉬워졌다. 고객관리는 더욱 쉬워졌고.
영업의 중요한 포인트는 사람들이 나를 믿되 절대 가볍게 보지 않는 것, 나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야 하고, 내가 예의를 차리고 숙이더라도 절대 비굴해 보이면 안 될 것이었다. 그런 걸 말이나 행동이 아닌 분위기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의식보다 무의식이 우리에게도, 타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개인의 성공을 위해 무의식을 가꿔야 하고 무의식을 가꾸는 방법은 매일매일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잘 나가는 영업 사원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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